14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
요즘 부쩍 식물을 잘 키울 수 있다는 자심감이 붙었다. 그런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 것은 작년 여름이었지만, 요즘은 어깨너머로 들은 이야기가 많아 그 자신감이 한층 더해졌다. 게다가 알게 된 식물도 더 많아졌고, 그렇게 다양한 식물들을 접하게 되니 새로 들이고 싶은 식물도 많아졌다. 식물을 새로 들일 때 가장 큰 문제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보통 소품을 사서 대품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찬 마음으로 데려오는데,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그 시간을 내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자만심(?)이 아닐까 싶다가도, 그 긴 시간 동안 혹시나 내 마음이 변해서 그만 키우고 싶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생겼다. 그래서 꼭 확인하는 모습이 성체가 되었을 때의 모습이다.
작은 유묘들은 대체로 귀엽고 예쁘다. 그러다 커다란 성체가 되었을 때 모습은 사뭇 다른 경우가 많다. 식물도 동물과 마찬 가지로 내가 잘 키우겠다고 데려오는건데, 커져서 모습이 취향이 아니라고 그냥 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키우고 싶다는 사람이 생기면 동물과는 달리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건네줄 수 있을 것 같긴한데, 그래도 또 내가 잘 키우겠다고 데리고 온 아이를 선뜻 포기하는 것 같아 무책임해 보인다. 식물이 동물처럼 표현을 못해도 나름 우리집 베란다 자리에 적응하고 마음에 들어 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중요하게 보는 것이 성체의 모습이다. 멀리 내다 보아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성체의 모습도 나의 취향이고 내가 계속 예뻐할 수 있으면 데려온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니 나의 취향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취향이 소나무 같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변덕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여리여리한 식물을 좋아하는 것은 여전한데, 아스파라거스에서 호주식물로 순식간에 마음이 갔다). 순간 지금 예뻐보여서 몇달 보고 질려할 거라면, 그 후에 내가 꾸준히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정말정말 취향에 맞는 식물만 데려오고 아닌 것은 넘어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잘 몰라 무분별하게 들였던 내 베란다 식물들도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있다. 함부로 번식도 시키지 않는다. 지금 무늬 싱고니움만 열 개, 홍콩야자만 8개가 자라고 있다. 내가 다 이고지고 가야 하는데, 너무 버거워지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들도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그동안 당근 온도는 정말 많이 올랐다. 이제야 좀 신중하게 들이고 내는 일을 결정하고 있는 것 같다. 식물이 한 자리에 적응하는데 1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원래 이동성이 없기 때문에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는 것 같다. 적응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는 식물의 입장도 생각해서 앞으로도 좀 더 신중해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