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아는 만큼 보인다, 미스김라일락
20년을 훌쩍 넘긴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즈음 지어진 아파트들의 큰 특징 중의 하나가 화단이 굉장히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나무가 많다. 한여름에는 1층 현관을 나서면 순간 여기가 숲인가 싶을 정도로 무성하다. 나무도 종류별로 있다. 몇년 전에 관리사무소에서 나무들에 일제히 이름표를 달아주어서 그걸 보는 재미도 좀 있었다. 근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크고 특징적인 나무들에만 달아주었기 때문에 모든 나무의 이름을 알지는 못했다.
그러다 최근에 유난히 월동도 잘 되고 병해충에도 강한 나무를 알게 되었는데, 바로 미스김라일락이었다. 토분에서도 월동이 잘 되고, 꽃이 핌에도 벌레들이 그렇게 달려들지 않는, 키우기 아주 무난한 나무었다(물론 실외에서). 그 이름도 슬픈 미스김라일락이다. 우리나라 종자인데 미국인이 채취해 갔고, 일본에서 종자 저작권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저작권료를 내고 구매해야 한다는, 그 미스김라일락은 역시나 우리나라 땅에서 제일 강하게 사는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그냥 스쳐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이 미스김라일락 나무는 더 자주 눈에 띄었다.
그러다 한번도 눈길을 제대로 주지 않았던, 구석진 길에 있는 내 키 정도 되는 나무에서 그 연보랏빛 꽃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은 아니었는데, 아이가 좋아해서 같이 걷다보니 라일락 나무가 여러 그루가 모여있는게 보였다. 종종 큰 화분에 이 나무를 가게 앞에서 키우는 것은 보았어도, 이렇게 가까이에 화단에 심어져 있을 줄은 몰랐다. 신나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이 곳에 몇 년을 살면서, 몇 년은 또 미스김라일락을 키우고 싶어했었으면서도 이렇게 많이 여기 있는 줄은 몰랐다.
단지를 돌다 보면 또 종종 라일락 나무가 보이곤 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야외에 심어져 있는걸 보고 나니 이렇게 쉽게 찾았다. 이렇게 해마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을텐데, 그걸 올해 처음 제대로 보았다. 한 번 보고 나니 다음은 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아는만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