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식물일지

16 식물을 키우는 마음

그리너리⭐️ 2023. 5. 12. 18:06

  본격적으로 식물을 키우는데 푹 빠진건 일년 전쯤이지만, 나는 십대 때부터 식물을 키웠다. 나의 첫 번째 식물은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 남산 밑의 온실에 갔을 때 엄마가 사준 월동자였다. 그리고 초등학생 시절에 마당에 고구마 심어서 키웠던 적도 있었고 하지만, 내가 정말 마음이 동해서 키웠던건 풍란이었다. 교과서에 나온 풍란이라는 이육사 시인의 글을 보고 나도 그 향기가 맡고 싶어서 동네 꽃집에서 사서 키웠다.

  난의 꽃을 보는건, 그것도 식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난의 꽃을 피워보는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이름부터 왜 풍란인지를 모르고 있었으니, 잘 키울리 만무했다. 그리고 어쩌다 한번 씩 엄마를 졸라 양재동에 꽃시장을 갔다. 물론 내가 가자고 할 때마다 엄마는 싫어했다. 엄마는 화초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던 내가 그냥 공부나 했으면 하는 줄 알았다. 근데 언제 한번은 내가 난을 고르는 사이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가 그랬다.

  "이런거 좋아하면 외롭다던데."

  아직 20대 초반의 나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이 한동안 잊히지 않았다. 외로움이라는건 꽤 오랫동안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게 없는게 상상이 안갔기 때문에 이런 말에 크게 타격을 받지도 않았다. 그렇게 잊고 살았는데, 요즘 들어 문득 이 말이 다시 떠올랐다.

  옛날 어른들이 식물을 좋아하면 외롭다고 한 이유가 아마 사람하고 부대껴야 하는 시간에 혼자 식물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 말은 인과관계가 반대로 되었다. 외롭기 때문에 그 외로움을 해소하려고 식물을 들여다 보게 되는거 아닐까 싶다.

  외로움. 원래 인간은 외롭다라는 말로 치부하기에는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외로웠던 것 같다. 지금도 외롭다. 많은 변수들이 있어서 정확히 어떤 이유 때문에 더 외로움을 느끼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타인과 관계 맺기가 어려운 기질일 수도 있고, 관계 맺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원인이야 다양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외로움을 많이 탄다는 거 아닐까. 그리고 그걸 내가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아닐까.

  문화적 특성이 많이 작용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원인에 집착한다. 물론 나 역시 원인을 알아서 그걸 해결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사람의 삶에는 너무 많은 변수들이 있고, 그 변수들이 서로 다양한 방법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를 원인으로 딱 짚어내기 어렵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손 놓고 있으면, 지금과 똑같은 삶이 지속된다. 어느날 갑자기 삶이 "그동안 힘들었지? 이제 안힘들게 해줄게!"하고 확 바뀌지 않는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오늘 하루 내가 숨쉬는 방법(그렇게 아주 작고 사소해서 티도 안나는 것)을 바꿔보면 내일은 느껴지지 않지만 아주 조금 바뀌어 있고,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결국 내 삶도 바뀌어 있지 않을까.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나는 식물로 그걸 해소했다. 그리고 다른 노력들을 더 해서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식물로 소통하면서 산다. 요즘은 그 부분이 즐겁다. 외로움은 잠시 저편으로 미뤄놓고 그 즐거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나는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간다. 특별히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주지 않아도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훨씬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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