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식물일지

27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힘

그리너리⭐️ 2023. 6. 13. 23:18

 

  집안에서 식물을 키우는 것의 최대 장점은 아마 계절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점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야외에 비하면 그렇다. 야외에서 식물을 기른다면 통상적으로 유통 되는 관엽 식물들의 팔할은 겨울에 얼어 죽고 말 것이다. 절대 다수가 열대우림 지역의 식물들인만큼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일년을 넘기기 힘들다.

  그리고 보통 실내는 사람이 좋아하는 온도에 맞춰져 있다. 보통 10도 후반에서 20도 초반. 더 추워지면 난방을 켜고, 더 더 워지면 에어컨을 튼다. 식물도 사람도 지구상의 존재가 맞다고 느끼는게, 좋아하는 환경이 꽤나 비슷하다.

  근데 아무리 겨울에 따뜻한 집안에 들여놓고, 여름에도 선선하게 해주어도 식물들의 성장세는 봄가을만 못하다. 물론 습도나 통풍 등의 여러 가지 다른 요인들도 작용하지만, 집안에 있는 식물들도 겨울을 아는 것 같다. 온실을 해주고, 난방을 틀면서 서큘레이터를 돌려주어도 겨울에는 잎 한 장 안 내놓던 식물들이 날이 풀리고 바람이 따듯해지면 여기저기서 새순을 마구 내놓는다. 마치 한여름에는 아무리 냉장고에 잘 넣어두어도 반찬이 금방 쉬는 것처럼, 아무리 잘 관리는 해주어도 식물들은 자신이 놓인 공간 밖의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대자연의 계절을 읽고 있는 것 같다.

  겨울내 그렇게 비리비리하던 식물들이 봄이 왔다고 하나둘 꽃도 피우고 새순도 내서 기특하긴 한데, 지금은 또 다가올 여름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올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 것이며, 에어컨을 틀기 시작하면 베란다에 있을 수도 없어서 마땅한 피난처도 없는데 다 어디로 옮겨줄 것이며. 오늘도 고민에 고민을 더하면서 집안을 요리조리 둘러보면서 식물들을 대이동해줄 자리를 찾고 있다. 이럴 때는 정말 마당 있는 집, 테라스가 있는 집으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