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가마니처럼 가만히 있기
아주 어릴 때, 그러니까 한 열살쯤 되었을 때, 다시 태어나면 나무로 태어나서 가만히 있다 죽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다. 그 쪼그만게 뭐 할일이 그렇게 많다고,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 나름대로 피곤한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어릴 때는 몰랐다. 나무도 한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또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얼마나 더 치열한지를.
조그만 화분에 흙을 좀 담고 가끔 물을 주면서 식물을 키우면서 새로 치면 새장에 가두고 모이와 물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 근데 식물을 또 그 안을 자신의 세상으로 만들고, 생존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리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것과 같이 또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간다. 이파리가 떨어지면 거기서 또 뿌리가 나기도 하고, 가지를 꺽어 흙에 심으면 또 뿌리가 나기도 하고, 보이지 않을만큼 작은 벌레와 미생물들과 싸우고 공존 하면서. 방법은 조금씩 달라도 또 다시 온전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애쓴다. 그러다 안되면 어떤 종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자손을 퍼트리고 자신은 죽는다.
가마니처럼 가만히 있고 싶었던 나의 소망과는 달리 식물들은 우리 눈에 보이는 이동만 하지 않을 뿐,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또 생각해보면 살아 있는 것이 가만히 있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살아있는 한 끊임 없이 성장하고,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자연스러운 일이 버겁게 느껴진다면, 그건 아마 내가 지고 있는 짐이 과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럴 땐 쉬어야 한다. 높은 확률로 몸이 피곤할거고, 마음이 공허할거다. 몸을 잘 먹고 쉬게 하면 비어진 마음에 조금씩 무언가 들어차기 시작할 것이고, 그러면 비로소 주변이 보인다. 그때 한 번 화분 속에서 오늘도 치열하게 물을 빨아 들이고 새순을 올리고 있는 식물을 보면서,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고 또 하루만 더 넘기면 된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또 괜찮아지고, 이 또한 지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