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프리카 괴근 식물을 처음 보았을 때 느낌은 우와 신기하다! 정도. 키워볼까 하기에는 나는 하늘하늘 거리는 풀 종류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냥 그러고 말았는데, 식물에 한참 빠져 살던 시기에 어느날 갑자기 그락실리우스 라는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떠나질 않았다. 내가 아는 이름은 아닌데, 왜 그 이름이 자꾸 머리속을 맴도는지 모르겠어서 검색을 했더니 아프리카 괴근 식물 사진이 쭈욱 떴다. 아, 이게 그락실리우스구나. 근데 왜 자꾸 이름이 생각날까. 그래서 약간 이름을 잊지 못하고, 운명이라고 믿고 결국 새끼 손가락만한 실생 그락실리우스를 데려왔다. 정말 새끼 손가락만 했고, 또 손가락처럼 생기기도 했다. 왜 이게 이름이 자꾸 생각 났을까 하는 하며 한참을 뚫어져라 보았다. 특이하게 생겼다. 단단한 기둥 같은, 생명체 같지 않은 기둥에 초록 이파리들이 옆으로 길게 펼쳐져 있었는데, 아무리 길게 펼쳐도 너무 작았다. 보면 볼수록 작고 귀여웠다.
집에 온지 한달쯤 되었을 때
몇 십만원대 하는 거대한 그락실리우스들은 수입이라서 뿌리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 뿌리가 없는 경우도 있고, 그러면 축적하고 있는 영양분을 다 소모하면 죽는다고도 했다. 수입할 때 뿌리를 다 잘라서 들어오는데, 뿌리가 쉽게 잘 나는 친구들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굳이굳이 실생을 찾아서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면 뿌리가 많지 않을까? 그리고 한 십년 키우면 저런 거대한 그락실리우스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건 아마 내가 평생 키워도 보지 못할 확률이 크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축적된 식물.
근데 생각보다 성장 속도가 눈에 보였다. 정확한 기간은 생각나지 않지만, 몇달 지나니 머리가 쑤욱 자라있었다. 그리고 새 잎도 많이 나왔다. 어딘가 위에서 길게 잡아당긴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이만큼 자란게 신기했다. 백년은 걸린다길래, 자라는 속도가 눈에 안보일줄 알았는데, 그래도 역시나 생명은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게 티가 난다. 한편으로는 쭉 길어진 머리가 어쩌면 햇빛 부족으로 웃자람이 아닐까 싶어서 햇빛이 더 잘 드는 자리로 옮겨 주었다. 한국의 햇빛이 아무리 많이 쐬어져도 너한테는 부족하겠지. 그래도 일단 거실 창가 제일 빛 잘드는 곳에, 다른 키 큰 식물들의 잎에 가리지 않게 자리를 잡아주었다.
2023. 2.
아프리카 식물이라고 방심했지만, 이런 유묘들은 물을 많이 필요로 한다. 배수가 잘 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하루는 날을 정해놓고 물을 주었다. 수분측정기를 꽂아보아도 물이 쉽게 말랐다. 선인장이나 아프리카 식물이라고 몇 달씩 물을 안주는게 아니다. 어쩌다 한 번 물 주는 날을 놓쳤더니 잎이 노란색이 되면서 우수수 떨어졌다. 그래서 지금은 이런 미운 모습. 그래도 꾸준히 새순을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에 항상 기특하다. 잎을 떨굴 때도 아래부터 하엽이 아니라 햇빛이 덜 드는 쪽부터 버리는 모습도 뭔가 똑똑했다.
2023. 4. 물 한번 말렸더니 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아마 뿌리가 많이 발달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인터넷에 찾아도 뿌리가 관엽 식물처럼 거대하고 어마어마하게 발달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래서 언제 분갈이를 해줘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이 쪽 식물에 대해서는 아는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전문가가 잘 섞어둔 배합용토도 구매했다. 흙이 도착하면, 조금만 더 미뤘다가 분갈이도 도전해보아야겠다. 그락실리우스가 성장하느라 푹 꺼진 흙은 먼저 보충해주고. 아, 그리고 결국 조금 더 돈을 주고 분지가 있는 3년생을 들였다. 지금 그락실리우스는 아마 1년 생을 들여 내가 반년 넘게 키운 것이고, 3-4년생은 작게나마 분지들이 생긴다 2-3년의 시간은 2만원이면 살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 어쩐지 씁슬하면서, 일단 그만큼이라도 커진 그락실리우스를 봐서 좋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물은 정확한 생일을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나이를 가늠할 수 있게 되어서 좋다. 작은 첫째 그락실리우스는 2021년생, 지금 오고 있는 큰 둘째 그락실리우스는 2020년 생. 과연 첫째가 일년이 더 지나면 지금의 둘째 만해질까. 근데 숫자로 써놓고 보니까 둘이 큰 연수 차이가 아니다. 아직 정확한 기간을 알기에는 내 지식이 좀 부족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