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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 죽은 몽둥이도 다시 보자_기뻐서 쓰는 글
    나의 식물일지 2023. 5. 24. 22:19

      한 때는 처음 보는데 색감이나 잎 모양이 너무 예뻐서 눈 감으면 아른 거리던 경우, 그걸 매번 참고 안사는게 어느 날 화가 나서 스테인글라스 아마조니카를 데려왔다. 한겨울에 온실도 없이 정말 간도 컸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시간이 흐를 수록 이파리를 하나씩 떨구더니 결국 하나도 남지 않았다. 프라이덱과 아마조니카는 또 차원이 달랐다. 원하는 환경도 차원이 달랐고, 관리법도 달랐고, 성장 속도도 달랐고, 가격도 달랐다. 아마조니카는 뭐든지 어려운 쪽으로 한수 위였다. 거북이 놈들. 아마조니카조차 실물도 본적 없는 내가 무엇을 믿고 스테인글라스를 데려왔는지.
      그렇게 몽둥이를 하나 얻었다. 이파리가 없이 밑둥만 남은걸 몽둥이라도 한다. 그걸 찔끔 있는 레츄자폰에 넣고 물을 주다 말다 주다 말다. 이걸 주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고, 건조한 겨울이라 내가 또 쳐다보기 전에 금방 물이 말라버리기도 했고. 솔직히 믿음이 없어서 열심히지 않았다. 볼때 마다 나의 실패를 증명하는 것 같아서,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다. 그즈음에는 또 그런게 자극이 되면 더 힘든 시기였다.
      그래도 아깝다는 마음이 이겨서 그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언젠가 나의 플라스틱 김치통 온실에 넣어야겠다는 생각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비집고 들어가게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습도는 거의 90%에 육박하고, 레츄자 물을 부어서 받침에 살짝 찰랑 거리게 두었다. 그리고 봄이 되었다. 동네방네 자랑하고 있는 립살리스가 새순을 내기 시작하면서 그 몽둥이도 옆구리에서 무언가 하얀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와. 믿을 수 없었다. 겨울에 그렇게 빼짝 말린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뿌리가 나온다고? 그리고 일주일 뒤에 또 반대편에서 하얀게 뚫고 나왔다. 와.
      아마조니카 유묘도 하나 있었는데, 걔는 온실 속에서도 겨울에 잎을 끝까지 다 떨구었다. 잎이 죽는 것 같길래 온실에 자리 마련해주었지만, 소용 없이 말라서 떨어졌다. 그래도 몸통이 남아 있으니 믿는다며, 사실은 또 실패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기도 했고, 무엇보다 뿌리가 있었다. 잎은 없지만 뿌리가 있으면 아직은 시도해볼만하다. 그래서 그냥 두었더니, 봄이 왔고 무언가 하얀게 고개를 빼꼼. 아. 봄을 정말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지난 가을부터 내내 얼음이던 아마조니카 바리에가타가도 드디어 신엽이라는 것을 올리기 시작했다. 프라이덱처럼 이전 신엽에서 만들어져서 갈라져 나오는줄 알았는데, 밑에서 새로 올라오는 모양새에 가까웠다. 이러다 죽을까봐 정말 걱정이었는데, 큼지막한 신엽을 보게 되다니. 그래 죽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신엽이 나온다.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무언가 하고 있다.
      나의 아마조니카 심폐소생기.

    나의 플라스틱통 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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