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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3 식태기...?
    나의 식물일지 2023. 1. 8. 00:49


    정말 오랜만에 물 주기가 “귀찮아”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면서 물 줄 아이를 찾던 내가 오늘은 그 앞에서 귀찮아 하며 두 번이나 돌아섰다. 하지만 진짜 마음은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의기소침해졌다. 잎 6장을 만들던 트루비문라이트가 죽어갔고, 잎 한 장짜리도 하나 죽었다. 설상가상으로 쭉쭉 자라던 알로카시아들이 날이 추워지면서 잠잠해졌다. 후자는 느려져서 재미가 없다고 요약할 수 있겠지만, 전자는 아니다. 자신감을 잃었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까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깊은 나락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새순도 잘 올리며 크던 트루비


    나는 완벽주의자다. 완벽주의에도 종류가 있다. ‘성장 지향적인 완벽주의자’들은 도전적인 과제에 뛰어들어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성취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실패가 예견되는 일에는 뛰어들지 않는 ‘부정적 완벽주의’가 있다. 그렇다. 트루비의 죽음은 나에게 가드닝의 실패를 예견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식물을 키우는 일에서 멀어지려 하고 있었다.



    잠깐의 의기소침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한여름의 사진첩을 열었다. 매일매일 자라는게 신기하다고 찍어 놓은 사진이 무수히 많았다. 달력을 들춰봤다. 겨울이 삼 분의 일이나 지나갔다. 앞으로 두 달만 더 버티면 되었다. 또 환경의 변화도 생각해봤다. 겨울이 오고 온도는 급격히 떨어졌고, 항상 건조했으며, 환기는 어려웠다. 약간 쌀쌀한 날씨에 택배로 배송 온 잎 한 장짜리 트루비는 여행의 고단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실패에서는 약간의 남 탓도 도움이 된다. 남 탓 잘하는 사람들이 덜 우울하다는 연구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다독였다. 트루비와 겨울은 처음이라 대처법을 잘 몰랐던 거라고, 얼음인 아이들도 봄이 오면 다시 쭉쭉 새 잎을 뽑아낼거라고, 몇 달씩 기다려야 간신히 새 잎 내주는 경우도 많다고, 어쩌다 하나 정도는 보내도 괜찮다고(안 괜찮아 ㅠㅠ).
    이렇게 내 사고 회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보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내 완벽주의를 내려놓으려고 오늘도 노력한다.



    2022.12.27. 그리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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