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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 미래를 내다보는 일, 가지치기
    나의 식물일지 2023. 6. 10. 22:40


      예전에는 일년은 못 넘기고 식물들이 죽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식은 현저히 부족한데 보는 눈은 있어서 예쁜 애들만 데려왔다. 예쁜 아이들은 대체로 잎이 작거나 얇고, 그런 애들은 키우기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니, 오래 사는게 이상한 일이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집에서 삼년 오년을 넘기는 식물들이 생겼고, 그러면 더 큰 화분으로 계속 옮겨줄 수가 없어 포기 나누기 등의 방법으로 분화를 시켰다. 그러다 이제는 나무에 눈을 떴다.
      목본류들은 아무래도 초본류보다는 실내에서 키우기 어렵다. 불가능은 아니지만, 힘들어한다. 그리고 오래 키우다보면 크기가 감당 안되게 커진다. 그래도 나무 사랑은 식을 줄을 몰랐다.
      초본류들은 그다지 가지치기가 필요하지 않다. 하엽 정도 떼주면 된다. 그리고 그때는 크는게 신기해서 어디 한번 크고 싶은 만큼 커봐라! 라고 생각했다. 근데 나무들은 상황이 달랐다.
      일단 키를 무한정 크게 둘 수가 없었다. 그러다 천장 뚫어 버리면 큰일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고개가 꺾여질 판이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나무 키를 적당히 조절해 가며 키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가지치기를 해줘야 목대가 굵어져 나무답게 혼자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여리여리한 수형이 대세라지만, 혼자 서 있지 못하면 나무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지지대를 세우면 예쁘지도 않았다. 목대를 키우기 위해서는 가지치기를 해야했다.
      근데 어려움도 있었다. 어디를 어떻게 잘라야 할지 모르겠다. 가지치기의 기본은 한 가지의 중간을 자르면 거기서 보통 2개의 새순이 나와서 점점 풍성해지는 것인데, 여기서 제일 어려운 점은 정확히 어느 위치에서 새순이 나올지 모른다는 점이다. 몇 번의 경험치가 쌓이면 대충 예상이 되겠지만, 가지치기만큼은 생초보였고, 지독히도 외목대를 좋아했고, 실패하기에는 나는 이 식물이 하나 밖에 없었고, 또 한번 자르면 새순이 나와서 가지가 길어지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 성격 급한 내가 그 시간을 참고 기다릴 수 있을까.
      그러다 깨달았다. 가지치기는 미래를 내다보는 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자라날지를 예상하면서 가지를 치기 때문에 한 수 앞을 내다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사람들이 지나온 길을 보면서 우리집 부어매니 가지치기를 했다. 자를 때마다 너무 아깝고 아까웠지만 그래도 과감하게 잘랐다. 남이 온 길을 보면서 내가 갈 길을 가늠하고, 그 경험이 쌓이면 내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다른 사람들이 내가 온 길을 따라오겠지. 집에 두고 무심히 키우는 것 같지만, 식물을 키우는 행위 안에도 세상이 담겨 있다. 우리 부어매니 화이팅!!
     
     

    있었는데, 없는 가지치기 전의 부어매니

     
     
    사람들이 보통 가지치기 직후 사진은 볼품 없어서 안 올리는데, 그런 사진을 많이 올려주어서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또 정작 내꺼는 못 올리겠는게 아직 성공하지 못해서 자신 있게 사진을 내놓을 수가 없다. 결국 변명을 하느라 말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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