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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6 아프면 아픈 티 좀 내줘(feat. 프라이덱, 응애)
    나의 식물일지 2023. 1. 22. 01:21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세상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사람이, 심적으로 너무 힘들지만, 잘 티가 안나는 사람들. 둘러보면 주변에 꽤 많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괜찮아 보이고, 또 괜찮은 척하느라 자기 힘든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아무 문제가 없는 줄 알고 넘어간다. 근데 그런 시간들이 마음속에 쌓이고 쌓여서 결국 언젠가 균열을 만들고, 그 균열이 깨질 때 주변 사람들은 멀쩡하더니 갑자기 이상해졌다며 이해하지 못한다. 근데 사실 모든 일에 '갑자기'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아침 햇살 받은 그린 프라이덱 Frydek



    이런 사람들은 상담 장면에 와서 하염 없이 울기만 한다. 일 년을 이 년을 운다. 그렇게 쏟아낼 눈물을 다 쏟아내면 그제야 자신의 진짜 감정을 마주 보게 되고 인정하게 되면서, 괜찮은 척이 아닌 진짜 괜찮은 상태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식물로 치면, 내가 키우던 프라이덱이 지난 여름 이런 과정을 겪었다.. 우리 집에 와서 곧장 새 잎을 잘 내던 프라이덱이 어느 날 멈추어버렸다. 어서 빨리 커지고 여러 잎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나는 왜 그런가 조바심을 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지 못했다. 그러다 하루 여행을 다녀왔고, 여행에 다녀온 뒤에 여기저기 쳐져 있는 거미줄을 보고 깨달았다. 응애였다. 나는 왜 새 잎이 안 나오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프라이덱은 그 사이 혼자 응애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매일 같이 잎을 뒤집어 보지 않으면, 사실 실내에서 기르는 식물들에 생기는 벌레는 알기 어렵다. 굉장히 작기 때문에 잘 눈에 띄지도 않고, 처음 얼마간은 식물 자체에도 아무 변화가 없다. 그러다 한번 해충들의 세가 우세해지면 식물을 급격히 죽는다. 그래서 신엽이 나오다 멈추었거나, 신엽에 작은 상처라도 하나 생기면, 그런 작은 신호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때가 제일 쉽게 벌레를 잡을 수 있을 때다. 그때 해충 박멸 모드로 관리를 해주어 벌레가 사라지고, 또 약간의 회복기를 지나면 식물을 다시 자신의 속도대로 성장한다. 그렇게 응애를 박멸하고 프라이덱은 한겨울까지도 쉬지 않고 커다란 새 잎을 내주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괜찮은 걸 수도 있지만, 괜찮은 척 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고 잘 탐지하면 더 아프고 힘들어지기 전에 손을 내밀에 관계를 회복하고, 약간의 회복기를 거쳐 성장해 나갈 수 있다. 자신을 표현하는 게 서툰 사람일수록 더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면 참고 견디지 말고 자신이 아픈 만큼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과정을 잘하게 되면 회복기를 거쳐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또 한 번 크게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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