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
20 죽은 몽둥이도 다시 보자_기뻐서 쓰는 글나의 식물일지 2023. 5. 24. 22:19
한 때는 처음 보는데 색감이나 잎 모양이 너무 예뻐서 눈 감으면 아른 거리던 경우, 그걸 매번 참고 안사는게 어느 날 화가 나서 스테인글라스 아마조니카를 데려왔다. 한겨울에 온실도 없이 정말 간도 컸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시간이 흐를 수록 이파리를 하나씩 떨구더니 결국 하나도 남지 않았다. 프라이덱과 아마조니카는 또 차원이 달랐다. 원하는 환경도 차원이 달랐고, 관리법도 달랐고, 성장 속도도 달랐고, 가격도 달랐다. 아마조니카는 뭐든지 어려운 쪽으로 한수 위였다. 거북이 놈들. 아마조니카조차 실물도 본적 없는 내가 무엇을 믿고 스테인글라스를 데려왔는지. 그렇게 몽둥이를 하나 얻었다. 이파리가 없이 밑둥만 남은걸 몽둥이라도 한다. 그걸 찔끔 있는 레츄자폰에 넣고 물을 주다 말다 주다 말다. 이걸 주는게 ..
-
19 무던한 사람 무던한 식물나의 식물일지 2023. 5. 23. 20:00
오늘은 재택 근무를 하는 날이다. 그래서 출근 길에 쏟았을 아침의 30분을 고스란히 식물들 돌보는데 쓸 수 있었다. 오전에 베란다를 들여다보니 내가 아끼는 아카시아 나무들이 산들거리는 바람에 이파리 흔들며 서 있다. 확실히 봄이고 베란다라 그런가 물 마름도 많아져서 물이 고픈 아이들한테 물도 듬뿍 주었다. 그러면서 내 손이랑 발도 차가운 물에 한번씩 씻었다. 시원했다. 밖은 좀 덥지만 물은 아직 살짝 차가운 그런 계절. 미세먼지만 빼면 모든게 좋은 계절이다. 베란다는 좁다. 이 많은 식물들이 들어가 있기에는 조금 좁다. 그래도 사람이 다니는 길을 내야 하니까 약간씩 식물들을 다시 배치해본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분명히 내놓았는데, 저번에 긴기아난을 분촉하고 그냥 세워두었더니 다시 길이 좁아졌다. ..
-
아무튼, 식물_임이랑책 2023. 5. 23. 08:50
또 열두시가 넘었다. 책 읽는 속도가 엄청나게 느린 나는 오늘 집어든 책을 어쩌다보니 다 읽었다. 자야되는데 하면서 완전히 집중하지도 못하면서, 그래도 오늘은 끝내고 싶다는 마음에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면서, 그러다 결국 오늘도 열두시 반이 넘어버렸다. 눈꺼풀은 무섭고, 내일 잘 일어나려면 자야하는 시간은 이미 지났지만, 그래도 오늘은 이 새벽의 힘을 빌어 나도 무언가를 적고 싶었다. 한번도 이랑 님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들으면 아는 노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내가 아는 노래는 없다. 즉 나와 접점이 어떻게든 없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하는 모든 말들이 이렇게 하나하나 공감이 가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이게 식집사들의 마음인가. 그리고 또 신기하게 내가 그냥 내 느..
-
18 그락실리우스 파키포디움나의 식물일지 2023. 5. 22. 20:00
사실 아프리카 괴근 식물을 처음 보았을 때 느낌은 우와 신기하다! 정도. 키워볼까 하기에는 나는 하늘하늘 거리는 풀 종류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냥 그러고 말았는데, 식물에 한참 빠져 살던 시기에 어느날 갑자기 그락실리우스 라는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떠나질 않았다. 내가 아는 이름은 아닌데, 왜 그 이름이 자꾸 머리속을 맴도는지 모르겠어서 검색을 했더니 아프리카 괴근 식물 사진이 쭈욱 떴다. 아, 이게 그락실리우스구나. 근데 왜 자꾸 이름이 생각날까. 그래서 약간 이름을 잊지 못하고, 운명이라고 믿고 결국 새끼 손가락만한 실생 그락실리우스를 데려왔다. 정말 새끼 손가락만 했고, 또 손가락처럼 생기기도 했다. 왜 이게 이름이 자꾸 생각 났을까 하는 하며 한참을 뚫어져라 보았다. 특이하게 생겼다. 단단한..
-
17 오래된 사이나의 식물일지 2023. 5. 21. 08:00
요즘은 자극이 너무 많은 시대다. 그래서 그런지, 기질적으로 내가 성격이 급한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성격이 급하다. 무엇이든 빨리 빨리 일어나는 일이 흥미롭고, 영화 하나 드라마 하나를 봐도 호흡이 빠른 걸 좋아한다. 천천히 걷는건 답답해서 못 참겠고, 아무 읽어도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차분히 책에 집중하지 못한다. 나뿐 아니라 사람들이 다 성격이 급해서 열대 식물을 좋아하는거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무섭도록 빠르게 성장해야 눈에 확 보이니까 좋아하는거 아닐까 하고. 아무튼 자극에 민감해서 내가 뭐든 진드감치 하지 못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점이 큰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터넷으로 남들이 키우는 식물을 구경하면서 20년 키웠다는 식물들을 ..
-
16 식물을 키우는 마음나의 식물일지 2023. 5. 12. 18:06
본격적으로 식물을 키우는데 푹 빠진건 일년 전쯤이지만, 나는 십대 때부터 식물을 키웠다. 나의 첫 번째 식물은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 남산 밑의 온실에 갔을 때 엄마가 사준 월동자였다. 그리고 초등학생 시절에 마당에 고구마 심어서 키웠던 적도 있었고 하지만, 내가 정말 마음이 동해서 키웠던건 풍란이었다. 교과서에 나온 풍란이라는 이육사 시인의 글을 보고 나도 그 향기가 맡고 싶어서 동네 꽃집에서 사서 키웠다. 난의 꽃을 보는건, 그것도 식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난의 꽃을 피워보는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이름부터 왜 풍란인지를 모르고 있었으니, 잘 키울리 만무했다. 그리고 어쩌다 한번 씩 엄마를 졸라 양재동에 꽃시장을 갔다. 물론 내가 가자고 할 때마다 엄마는 싫어했다. 엄마는 화초에 큰 관심..
-
15 아는 만큼 보인다, 미스김라일락나의 식물일지 2023. 5. 9. 08:25
20년을 훌쩍 넘긴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즈음 지어진 아파트들의 큰 특징 중의 하나가 화단이 굉장히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나무가 많다. 한여름에는 1층 현관을 나서면 순간 여기가 숲인가 싶을 정도로 무성하다. 나무도 종류별로 있다. 몇년 전에 관리사무소에서 나무들에 일제히 이름표를 달아주어서 그걸 보는 재미도 좀 있었다. 근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크고 특징적인 나무들에만 달아주었기 때문에 모든 나무의 이름을 알지는 못했다. 그러다 최근에 유난히 월동도 잘 되고 병해충에도 강한 나무를 알게 되었는데, 바로 미스김라일락이었다. 토분에서도 월동이 잘 되고, 꽃이 핌에도 벌레들이 그렇게 달려들지 않는, 키우기 아주 무난한 나무었다(물론 실외에서). 그 이름도 슬픈 미스김라일락이다. 우리나라 종자인데 ..
-
14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나의 식물일지 2023. 5. 8. 08:25
요즘 부쩍 식물을 잘 키울 수 있다는 자심감이 붙었다. 그런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 것은 작년 여름이었지만, 요즘은 어깨너머로 들은 이야기가 많아 그 자신감이 한층 더해졌다. 게다가 알게 된 식물도 더 많아졌고, 그렇게 다양한 식물들을 접하게 되니 새로 들이고 싶은 식물도 많아졌다. 식물을 새로 들일 때 가장 큰 문제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보통 소품을 사서 대품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찬 마음으로 데려오는데,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그 시간을 내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자만심(?)이 아닐까 싶다가도, 그 긴 시간 동안 혹시나 내 마음이 변해서 그만 키우고 싶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생겼다. 그래서 꼭 확인하는 모습이 성체가 되었을 때의 모습이다. 작은 유묘들은 대체로 귀엽고 예쁘다. 그러다 커다란 성체가 ..